Back to overview

.

부서진 도자기의 파편들

철창 너머로 보이는 달빛은 차가웠다. 우즈보로의 그 뜨거웠던 피의 밤 이후, 내게 남은 것은 눅눅한 감옥의 공기와 쇠창살이 만드는 일정한 간격의 그림자뿐이었다. 옆 침대에서 들려오는 스튜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오늘따라 소름 끼치게 거슬렸다. 시드니 프레스콧. 그 계집애의 가슴에 칼을 꽂지 못했다는 굴욕감이 매일 밤 내 목을 조른다. 완벽했던 계획, 완벽했던 복수극은 한순간의 방심으로 무너졌고, 나는 이제 살인마가 아닌 한낱 죄수 번호로 불리는 처지가 되었다.

내면이 서서히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빌리 루미스가 아니었다. 눈밑은 하고 눈동자는 증오로 번들거렸다. 반면 스튜는 달랐다. 녀석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도 마치 학교 식당에 있는 것처럼 굴었다. 다른 죄수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간수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간식거리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 천박한 적응력이 나를 미치게 했다.

“야, 빌리. 너 또 그러고 있냐? 인상 좀 펴. 그러다 얼굴에 주름 생기겠다.”

스튜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낄낄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벽을 응시했다.

“말 좀 해봐, 친구. 우리 여기서 평생 썩을 것도 아니잖아? 뭐, 평생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즐겁게 지내야지.”

“즐거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녀석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실패했다는 게 안 느껴져? 그 계집애는 살아남아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데, 너는 여기서 간수들 비위나 맞추면서 낄낄거리고 있다고?”

스튜의 눈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녀석은 침대에서 내려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럼 어쩌라고? 너처럼 구석에 처박혀서 벽이나 긁고 있으면 시드니가 죽어? 아니면 문이 저절로 열려?”

“닥쳐, 스튜. 네 그 멍청한 낙천주의가 역겨워.”

“낙천주의? 내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난 그냥 살아남으려는 거야! 너처럼 자존심만 세우다가 미쳐가는 꼴 보기 싫어서!”

스튜가 내 멱살을 잡았다. 나도 참지 못하고 녀석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우리는 좁은 감방 안에서 엉겨 붙어 짐승처럼 싸웠다. 주먹이 오가고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억눌려 있던 분노가 폭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수들이 들이닥쳤고, 진압봉이 우리 몸을 강타했다. 차가운 바닥에 처박힌 채, 나는 결심했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탈옥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삼엄한 경비를 뚫으려면 도구가 필요했고,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간수들의 그 더러운 시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나를 죄수가 아닌, 탐스러운 먹잇감으로 보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일부러 복도 끝에서 나를 주시하던 간수 윌슨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는 내 목덜미와 엉덩이를 훑으며 입술을 핥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줘요. 그럼 당신이 원하는 걸 줄 테니까.”

스튜는 내 계획을 듣고 경악했다.

“미쳤어, 빌리? 네가 몸을 팔겠다고? 저 돼지 같은 놈들한테?”

“나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거야. 너도 같이 갈 거라면 입 닥치고 있어. 혼자 나갈 수도 있지만, 나가서 다시 시작하려면 네가 필요하니까.”

나는 스튜를 도구로서 선택했다. 그와 다시 우즈보로를 피로 물들이는 상상을 하며 고통을 견디기로 했다.

그날 밤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윌슨과 그의 동료들은 나를 관리실 뒤편의 어두운 방으로 데려갔다. 그들의 거친 손길이 내 몸을 유린할 때마다 나는 구역질을 참으며 그들의 주머니를 살폈고, 책상 위에 놓인 열쇠 꾸러미와 지도를 눈에 담았다. 살점이 뜯겨나가고 자존심이 짓밟히는 감각 속에서도 나는 차갑게 머리를 굴렸다. 배선반을 열 수 있는 드라이버, 외곽 담장의 순찰 시간표. 하나씩 정보를 모았다.

방으로 돌아올 때마다 스튜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봤다. 녀석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동정인지, 아니면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은 젖은 수건으로 내 몸의 흔적을 닦아주려 했지만, 나는 그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다.

“건드리지 마. 더러워.”

“빌리… 제발…”

“계획은 순조로워. 조금만 더 있으면 필요한 걸 다 얻을 수 있어.”

하지만 간수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내가 순순히 당해주면서도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들은 나를 방으로 부를 때마다 강제로 약물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걸 마셔야 더 화끈하게 놀지, 안 그래?”

윌슨이 비릿하게 웃으며 내 입에 싸구려 위스키를 들이부었다. 팔뚝에는 이름 모를 약물이 투여되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몸에 힘이 빠졌다. 그들은 인사불성이 된 나를 짐승처럼 다루었다. 탈옥 장비를 훔치기는커녕 내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감방으로 돌아오면 나는 항상 취해 있었고, 약물 기운에 몸을 떨었다. 스튜는 그런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빌리, 그만해. 이제 도구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이러다 너 진짜 죽어.”

스튜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파도 소리처럼 웅웅거렸다. 나는 녀석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니… 해야 돼… 나가야 해… 시드니를… 죽여야…”

“시드니는 잊어! 지금 네 꼴을 봐!”

스튜가 소리를 질렀다. 평소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아니었다. 녀석은 나를 껴안았다. 약물 때문에 뜨거워진 내 몸에 스튜의 체온이 닿았다. 평소라면 치워버렸을 그 온기가 그 순간만큼은 지독하게 달콤했다.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든 해볼게. 그러니까 제발…”

스튜는 간수들에게 빌붙어 얻어낸 담배나 간식을 바치며 나를 부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고, 때로는 대신 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간수들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스튜가 보는 앞에서도 나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어느 깊은 밤, 약물 기운이 평소보다 일찍 가셨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고, 하반신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저렸다. 옆에서 스튜가 자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스튜.”

내가 갈라진 목소리로 부르자 녀석이 황급히 다가왔다.

“어, 빌리. 정신이 들어?”

“나… 아직 포기 안 했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베개 밑에 숨겨두었던 작은 금속 조각을 꺼냈다. 지난번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훔쳐낸 통제실 카드키의 파편이었다.

“이걸로… 내일 밤에 끝낸다.”

스튜는 그 파편을 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래. 끝내자. 여기서 나가든, 아니면 같이 죽든.”

스튜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늘 나를 따라다니던 2인자의 눈이 아니었다. 녀석의 안에서도 무언가 무너졌고, 그 자리에 더 지독한 무언가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광기를 먹고 자라는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 지옥 같은 방 안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시드니에 대한 증오도, 탈옥에 대한 열망도 아닌, 내 손을 잡은 스튜의 축축한 손바닥이었다.

“빌리, 나갈 때… 내가 앞장설게. 넌 그냥 내 뒤에만 있어.”

스튜가 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녀석의 숨결에서 비릿한 피 냄새와 감옥의 악취가 섞여 났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우리는 자유를 얻거나, 영원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이미 우리는 우즈보로의 그 밤에 죽었고,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복수라는 이름의 유령일 뿐이니까.

“그래… 같이 가자.”

나는 처음으로 스튜의 손을 마주 잡았다. 부서진 도자기 파편처럼 날카롭고 위태로운 우리의 밤이 깊어갔다. 철창 사이로 들어오던 달빛이 구름에 가려졌다. 어둠이 우리를 완전히 집어삼켰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곁에 있는 이 미친 동료가, 나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나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